자리라는 말은 사람이나 물체가 차지하고 있는, 일정한 넓이의 공간이나 장소를 말하고 공간을 말할 때는 넓은 공간 좁은 공간 빈, 공간과, 가득한 공간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야외 공연이 있을 시는 지정된 자리가 없고 누구나 먼저 앉으면 되는 상황(狀況)에서는 서로 좋은 자리에 앉으며 다툼이 일어나고 어떤 때는 주먹다짐도 하며 몸싸움도 하게 된다. 다른 말로 표현할 때는 사람의 몸이나 물건 등에 어떤 일이 있었던 흔적이나 자국을 말하는데 예를 들어 화상을 입은 자리에 약을 바르도록, 해라는 등 이곳은 예전에 큰 절이 있던 자리이다.
그리고 일정한 조직에서 사람이 차지하고 있는 직위나 직책을 말하고 또는 높은 자리에 있을수록 책임이 무거워진다는 것을 명심하라 그리고 이 자리를 물러날 각오를 하고 각하에게 직언을 드리고자 한다든지 또는 일정한 자격을 갖춘 사람을 필요로 하는 곳이라든지 취직을, 하고 싶지만, 좋은 자리가 없다든지 잠을 잘 때 깔고 덮는 요와 이불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자리다툼이라는 것은 좋은 자리나 지위(地位)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다투는 것을 말할 때가 가장 많다. 그리하여 다툼이 일어나는 자리는 분명 좋은 자이라는 것이다. 좋은 자리에, 않기 위해서는 치열한 다툼이 일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다시 말하면 양보(讓步)가 없는 한 머리가 깨지게 다툼하는 것도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자리다툼에서 밀려나면 그 자리가 문제가 아니라 회사원은 회사를 그만두는 일까지도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자리다툼은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고 짐승 세계도 있다는 것이다. 한 둥우리 안에 몇 마리나 들어가 자리다툼이 생기는 수가 있다. 이는 생존을 위해서인지 안일함을 위해서인지는 모르지만, 자리다툼은 인간이나 짐승이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다윗왕과 그의 아들 압살롬은 아들이 권력을 탐하여 아버지인 다윗과 자리다툼을 하는데 치열하게 한다. 새들도 자기 영역이 있어 다른 종의 새들이 침범하면 자리다툼을 치열하게 한다. 그리고 사자나 모든 동물도 마찬가지다.
사자나 호랑이도 자기가 살고, 있는 영역(領域)을 표시하기 위하여 소변을 보는 것을 볼 수 있다. 자기 영역(領域)을 침범하면 죽기 살기로 싸운다. 그런데 인간도 국경(國境)을 침범하면 죽기 살기로 싸우는 것은, 짐승이나 다르지 않다. 이는 생존을 위하여 어쩔 수 없는 필수적(必須的)인 사생결단(死生決斷)을 해서라도 국토(國土)를 지키는 것은, 누가 욕하거나 나무랄 일이 아니고 당연한 일이라고 격려(激勵)하며 도움을 주어야 할 일이다.
그러나 국가를 침범하는 일도 아니고 국민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지 아니하는 일에 자리다툼을 하는 것을, 볼 때는 한심하고 어리석다는 생각이 들어 비난을 금할 수 없는 것이다. 다윗과 압살롬은 부자(父子)간, 인 데도 권력(權力)이라는 자리를 놓고 자리다툼을 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결국은 정치적인 면을 떠나서 도의적(道義的)으로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아니 되는 추태(醜態)를 백성들에게 보였다. 그리하여 결국에는 아들인 압살롬이 공중(空中)나무 가지에 머리가 걸려 죽고 말았다.
이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말하기를 “압살 놈아, 압살 놈아 차라리 내가 죽었으면 나를 뻔하였다.”라고 부모의 애정(愛情) 어린 말을 했다. 권력의 자리가 무엇이길래 부자간에도 자리다툼을 하는 것인지 세력다툼이나 권력 다툼에는 부모형제(父母兄弟)도 필요가 없는 것 같이 많은,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은 썩 좋은 현상은 아니다. 축복(祝福)이라는 자리를 놓고 에서 와 야곱의 자리다툼은 치사(恥事)하게 보였다. 본래는 장자(長子)가 축복의 자리를 받게 되어 있다.
그런데 에서는 원칙을 떠나서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에서 와, 야곱은 쌍둥이였다. 그런데 그들이 태(胎)에 있을 때부터 하나님께서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리라고 하였다. 이것이 하늘의 뜻이었다. 그리고 태어나서 자라면서 에서는 하늘의 뜻에 따라 축복을, 받는 과정에 따라 에서는 야곱인 동생에게 팥죽 한 그릇에 장자(長子)의 명분(名分)을 팔아먹었다. 그렇다면 이는 아무리 장자의 명분을 가지고 있어도 축복은 야곱이 받는 것이 순리(順理)이다.
그런데 아버지는 에서 에게 별미(別味)를 조건적으로 요구하면서 짐승을 잡아서 별미를 만들어 와서 내가 먹게 하면 먹은 후에 축복하겠다고 하여 그때부터 자리다툼의 불씨를 집히게 되었다. 이 말은 들은 어미니, 리브 가는, 가만히 두어도 원칙적으로 야곱이 축복을, 받기로 되어 있는 것이, 하늘의 뜻이었는데 자리다툼에서 이길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아들에게 위장과 거짓말을 하도록 촌극을 연출하여 별미를 만들어 야곱에게 주면서 아버지에게 드리고 축복받으라고 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야곱은 손에 털이 없고 에서는 털이 있어 탄로가 나면 자리다툼에서 밀리기 때문에 어머니는 야곱의 손에 털이 있는 것같이 변장하였다. 그리하여 원칙(原則)을 벗어나서 변칙적(變則的)인 방법을 동원하여 자리다툼에서 이기게 되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어설픈 촌극을 연출한 결과로 많은 고생을 하게 되었고 아버지를 속인 죗값을 아들에게 그대로 받았다는 점에서 변칙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받은 결과는 비싼 대가를 되돌려 받아야 한다는 진리를 알게 되었다.
같은 맥락에서 정치권의 행동을 보면 다윗왕이나 압살 놈 그리고 에서와 야곱이 생각나게 하는 일들이 국회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신문에 보니 “국회 상임위원장이 얼마나 좋길래 소송까지 하나”라는 제하에 민주당이 국회 상임위원장 자리를 놓고 벌어진 내분을 수습하지 못하고 있다. 정XX 최고위원은 행안위원장을 맡지 못하게 된 것에 불만을 품고 민주당 출신 국회의장을 상대로 소송을 예고했다. 지난달 30일 국회 본회의가 파행한 것도 이 문제 때문이었다. 상임위원장 7명을 새로 선출할 예정이었지만 민주당이 자기 당 몫 6명을 확정하지 못해 표결을, 못한 것이다. (2023, 6.8 조선일보 사설)
이 기사를 보는 순간 한심한 생각이 든다. 자리다툼 하기, 위하여 국회의원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과 함께 그 자리가 무엇이길래 자리다툼을 할까? 의문이 생긴다. 국회의원은 어디에 있든지 국가와 국민을 위한 자리가 아닌가? 그런데 상임위원 자리를 놓고 다투는 것인가? 제발 국회의원들이여 국민을 더 이상 실망하게 하지 말았으면 한다.
물론 그 자리 다툼하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겠지만 국민이 볼 때는 “염불에는 마음이 없고 제 밥에만 신경 쓰는 것 같아”서 매우 불쾌(不快)한 마음 숨길 수 없다. 제발 자리다툼 그만하고 국가와 국민을 위하여 노심초사(勞心焦思)하였으면 한다. 국민이 볼 때는 자리다툼 하는 이유는 그 자리다툼에서 이기면 그 자리에는 필시 국민이 알지 못하는 비밀스러운 내용이 있는 것으로, 의심하지 아니할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