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언에 “집은 좁아도 같이 살 수 있지만, 속이 좁은 사람과는 같이 살기 어렵다”라는 말이 있다. 속이 좁은 사람은 타인의 조그마한 간섭도 용납하지 않는다. 자신을 지키려는 방어기제(防禦機制)가 너무 강해 언제든 싸울 준비와 화낼 준비가 되어 있어“건드리기만 해 봐.”하고 여유 있는 삶이 아니고 항상 자신의 영역을 침해(侵害)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방어 태세를 세우고 있다. 다시 말하면 자기 영역을 침해받으면 동물처럼 저항하고 싸우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본능(本能)이 강한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다.
반면에 속이 넓다고 하는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집착(執着)이 약(弱)해서 자신의, 생각이나 주관을 타인에게 강요하지도 않는다. 자신에 대한 집착(執着)이 강(强)하면 타인이 들어올 자리가 없다. 집착이 없을수록 빈자리가 생긴다. 즉 타인을 수용할 공간(空間)이 마련되는 것이다. 속이 넓은 사람들은 수용과 포용, 용서를 할 줄 안다. 한 발짝 물러나 생각할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산의 전제적인 형상을 보려면 한 발짝 물러나야만 한다. 마찬가지로 마음의 작용을 살피려면 마음에서 한 발짝 물러나야만 한다.
속이 좁은 사람은 자기 이익만 생각하고 타인의 이익이 있다고 생각하면 시기와 질투심이 생겨 사촌이 땅을 사도 배가 아픈 것이다. 자기 이익에는 민감하지만, 남의 이익에는 그냥 두고만 볼 수 없는 고약한 성품을 소유한 사람이다. 본능이 강한 사람들은 본능이 끌어당기는 에너지가 강해 그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그래서 다시 본능에 끌어당겨져 방어기제(防禦機制)를 발동하며 숲에 머물게 된다. 반면 자존심에 약한 사람은 숲을 벗어나 숲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된다. 숲의 모습을 보게 되면 전체에 대한 형상과 작용원리를 알게 되어 자연적으로 자신에 대한 집착을 버릴 수 있게 된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속 좁은 사람이 제일 무섭다. 속언에 “저 사람의 마음은 대천 한 바다 같아”라는 말이 있다. 바다는 오물로, 받아드리고 강물도 받아드리며 생활오수도 받아드리고 온갖 쓰레기도 다 받아드린다. 같은 맥락에서 속이 넓은 사람은 이 말도 저 말도 다, 받아드린다. 그런데 속이 좁은 사람은 삐지기를 잘한다. 그 이유는 질투와 시기심에 사로잡혀 남을 쉽게 미워하고 싫어하는 이가 있다. 남을 쉽게 미워하는 이는 어쩌면 질투와 시기심이 강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갇혀있어 마의 여유가 없는 사람은 매우 공격적이다.
속이 넓은 사람은 자신의 욕심만 채우려고 하지 아니하고 베풀기를 좋아, 하고 남의 어려움을 자신의 어려움과 같이 생각하여 도와주지 아니하면 견디지를 못한다. 성경은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라고 하였다. 솔로몬 왕은 말하기를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더 부하게 되지만 과도히 아껴도 가난해 뿐이다.”라고 하였다. 속이 넓은 사람은 남의 어려움을 보고 견디지 못하고 반드시 돕는다. 만약에 돕지 못하면 마음이 아파서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러나 속이 좁은 사람은 남을 돕는 것은, 고사하고 도리어 공격적이다. 타인이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어도 보고 있지 못하고 시시비비를 걸고 달려든다. 이는 마음의 여유가 없으니까 어쩔 수 없다. 속언에 “동냥은 못 주어도 쪽박은 깨지 말라”라고 하였다. 자신의 속이 좁아 베풀지는 못해도 다른 사람이 돕는 것, 까지도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은, 사서 냉대받는 일을 자초하는 것이다. 미국은 청교도들로부터 시작하여 오늘의 세계 최대 강국이 된 것은, 세계 각국에 퍼주는 생활의 덕택이 아닌가? 생각한다.
아직도 미국 교인들은 새벽예배도 없고 수요일이나 저녁 예배도 드리지 않는 교회가 많아 한국 교인들이 볼 때는 미국교회는 신앙생활을 형편없이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래도 그들의 정신은 기독교 정신이 마음에 자리 잡고 있어 세계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나라를 보면 금식하면서도 돕는 정신이 아직도 미국을 세계 최대 강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6.25 전쟁 때 그들이 군대를 보내어 수만 명이 희생하여 대한민국을 지켰다.
그런가 하면 유엔에서 유엔군을 파병하여 대한민국이 공산화되지 않고 자유민주주의를 지금까지 지탱하고 있는 것은, 그들의 희생에 대하여 잊을 수 없게 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는 우리나라는 유엔에 빚을, 진 나라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차원에서 우리나라에서도 지금 어려움을 당하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침략을, 받아 많은 어려움을 당하여 전 세계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서 대한민국에서 돕자는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어느 원로 정치인이. 하는 말이 “우크라이나는 우리가 신세 질게, 아무것도 없는 나라”라며 “왜 우리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말려 들어가야 하나”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포탄을 지원한다는 외신 보도에 근거해 현 정부를 비판하면서 “그 포탄이 우크라이나에 들어가는 순간 러시아가 보복하지 않겠나. 이런 짓을 겁도 없이 하고 있다”라고 했다. 이런 속 좁은 사람이 국민을 위한다는 말은 아이러니(irony)가 아닌가? 생각한다. 정치인은 자국(自國)만을 위하는 속 좁은 정치인이 되지 말고 세계(世界)를 품을 수 있는 위대한 속이 넓은 사람이 필요하다. 러시아의 보복은 무섭고 우크라이나 참전으로 얻을 것은 없다는 식으로 발언한 것에 국민은 귀를 의심했다. 이런 정치인은 “우크라이나는 주로 농사나 많이 짓고, 우리나라 물건을 오히려 사가야 하는 나라”라고 했다. 러시아가 힘의 논리를 내세워 약소국을 침공하며 국제질서를 흔드는 것을, 못 본 척하겠다는 것은, 참으로 속 좁은 사람의 주장이지 속이 넓은 사람의 주장은 절대로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6. 25전쟁 때 세계적인 빚을 졌다. 이제는 어떤 방법이든지 빚을 갚아야 마음이 편하지 않겠나, 힘의 논리를 펴서 러시아 강대국이 우크라이나와 같은 약한 국가를 침략하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도 정당화할 수 없다. 이는 사람이 사는 사회는 짐승이 사는 정글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회생활에 속 좁은 사람은 자기밖에 모르고 타인에게 배려는 절대로 용납하지 아니하는 사람이 산다면 그 사회에서 살기는 매우 힘들다. 마찬가지로 속 좁은 정치인으로 자신의 이익만 챙기고 타인의 이익은 생각하지 아니하는 이런 자들은 정치인이 되어서는 절대로 아니 될 것이다. 적어도 세계인을 품을 수 있는 속이 넓은 사람이 정치인이 되어 자국의 지도자뿐만 아니라 세계의 지도자가 될만한 인물이 정치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