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무상(人生無常)이라는 말은 사람의 일생이 덧없이 흘러감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그래서 사람은 누구나 인생무상(人生無常)을 느끼는 것이다. 인생에 대한 사자성어를 보면 남가일몽(南柯一夢)이라 한다. 이는 남쪽으로 뻗은 나뭇가지 아래의 꿈이라는 말로 덧없는 꿈이나 부귀영화(富貴榮華)를 뜻하는 것이다. 그리고 몽환포영(夢幻泡影)이라 하였다. 이는 꿈과 환상과 그림자라는 말로 인생이 헛되고 덧없음을 뜻하는 것이다. 그리고 몽중점몽(夢中占夢)이라 하였는데 이는 꿈속에서 점을 친다는 말로 사람의 인생이 덧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부운조로(浮雲朝露)라 하였다. 이는 하늘에 떠도는 아침이슬이라는 말로 인생의 덧없음을 말한다. 영고일취(榮枯一炊)라 하였다. 이는 인생이 꽃피고 시드는 것은 한번 밥 짓는, 순간, 같이 덧없고 부질없다는 말이다. 그리고 일장춘몽(一場春夢)이라 하였는데 이는 한바탕 꿈을 꿀 때처럼 흔적도 없는 봄밤의 꿈이라 뜻으로 인간 세상의 덧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일취지몽(一炊之夢)이라는 말은 이는 인생과 영화는 덧없음을 말한다. 그리고 인생조로(人生朝露)라고 하였다. 이는 인간의 삶은 풀에 맺힌 이슬 같다는 말로 인생이 덧없음을 말한다. 그리고 초로인생(草路人生)이라고 한다. 이는 풀잎에 맺힌 이슬과 같이 덧없는 인생임을 말한다.
가수 최희준이 부른 “인생은 나그네”라는 가사를 보면 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 말자, 미련일랑 두지 말자 인생은 나그네, 길 구름이 흘러가듯 정처 없이 흘러서 간다. 인생은 벌거숭이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가? 강물이 흘러가듯 여울져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 말자, 미련일랑 두지 말자 인생은 벌거숭이 강물이 흘러가듯 소리 없이 흘러서 간다. 라고 노래하였다.
바울 사도는 말하기를 “세상에 올 때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한다.”라고 하였다. 이는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고 한 말과 같이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니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인간에게는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이는 다름이 아니라 죽음이라는 것이다. 중국의 진시황제는 죽지 아니하려고 무척이나 노력을 한 사람이다.
그리하여 그는 늙지 아니하려고 불로초(不老草)를 구하려고 애썼고 죽지 아니하려고 불사약(不死藥)을 구하려고 했다. 그러나 세상에 그런 약은 없다.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그는 말하기를 “누가 나를 1년만 더 살게 해준다면 중국의 절반을 주겠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중국 전체를 주어도 사람의 생명을 연장할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다. 그리하여 죽음에는 부자도 소용없고 권력자도 소용이 없다. 히틀러도 죽었고 공자도 맹자도 소크라테스도 모두 죽었다. 이는 세상에서 죽음을 좌우할 사람은 어느, 누구도 없다는 뜻이다.
문제는 언제 죽느냐? 일자(日子 日字 )를 모른다는 것이다. 죽음에는 남녀노소(男女老少) 차별이 없고 빈부귀천차별(貧富貴賤差別)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내일 일을 모르는 사람이 얼마나 더 살겠다고 인면수심(人面獸心)의 생활을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성경은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음이라”라고 하였다. 그리고 예레미야 선지자는 말하기를 “지혜로운 자는 지혜를 자랑하지 말고 용사는 그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사람은 언제 어느 시에 죽을지 알 수 없으니 살아 있는 동안에 죽을 준비를 하면서 사는 것이, 가장 현명한 처세술(處世術)이다. 그러므로 곱게 살고 곱게 늙고 곱게 죽는 길을 택해야 가장 인생을 값지게 사는 것이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무엇에 미쳐 개같이 살다가 개같이 죽는 것은 부끄러운 죽음이다. 기왕이면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사람같이 살다가 사람 같이 죽는 것도 좋지만, 사람으로 태어나 성자(聖者))같이 살다가 성자(聖者)같이 죽는 것은 매우 보람되게 살다가 보람되게 죽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을 보고 있노라면 이래 살아도 되는가? 하는 의문이 들 때가 많다. 인간이 언제 죽을지도 모르면서 천년(千年)이나 만년(萬年)을 살 것같이 생활하는 것을 보면 매우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어떤 사람은 죽으면 전 세계인이 슬퍼한다. 이는 세계인을 위하여 살았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죽으면 국민 전체가 애도한다. 그이 유는 그가 국가와 국민(國民)을 위하여 살았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죽으면 도민(道民)이 슬퍼한다. 그는 도민을 위하여 살았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죽으면 군민(郡民)이 슬퍼한다. 그는 군민을 위하여 살았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죽으면 면민(面民)이 슬퍼한다. 그는 면민을 위하여 살았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죽으면 가족(家族)들도 슬퍼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가족을 위하여 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죽으면 아내 한 사람만 슬퍼한다. 그 이유는 아내 한 사람만을 위하여 살았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죽으면 아무도 울지 않고 잘 죽었다고 그의 죽음을 뒤에서 즐기는 사람도 있다. 그러므로 반드시 죽기로 사형선고(死刑宣告)를 받고 태어난 인생이기에 멋진 죽음을 준비하면서 살아야 할 것이다.
사는 날까지 권력(權力)의 노예가 되고 돈에 노예가 되며 허랑방탕하여 타인이 저런 인간은 왜 죽지도 않고 사는지 귀신은 무엇을 하고 있기에 저런 인간을 잡아가지 않느냐? 라는 저주를 들으며 살아야 하는가? 사람은 죽고 나야 그가 생전(生前)에 어떻게 살았는가를 정확하게 판단 할 수 있다.
적어도 아까운 사람이 죽었어, 하고 눈물을 흘리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반대로 진작 죽었어야, 하는데 이제라도 죽었으니 마음이 시원하네! 라는 말을 듣는다면 이는 인생을 잘못 살았다는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인생의 무상함을 깨닫고 자기를 위하여 살지 말고 타인을 위하여 살아서 죽고 난 후에 주변 사람들이 아쉬워하며 안타깝게 여기며 아까운 사람 조금만 더 살았으면 좋았을 것을, 하고 그의 죽음을 안타깝고 아쉽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이 생기도록 살아야 할 것이다. 최소한 잘 죽었다는 말은 듣지 않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