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성(存在性)이란 말은 존재(存在)하는 특성(特性)을 말한다고 가치성(價値性)은 존재가치(存在價値)가 있느냐? 없느냐를 논할 때 사용하는 말이다. 태양의 존재성은 세계 만민이 인정하는 바이다. 그리고 그 가치성은 세상 만물의 생명을 위해서는 반드시 존재의 가치성을 인정하지 아니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에 태양(太陽)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상(假想)해보자 끔찍한 일이 아닌가? 세계 만민이 흑암(黑暗)에서 산다고 생각해보라 이는 기절할 일이다.
그리고 공기(空氣)가 존재하는 것과 그 가치성을 생각해보면 천만금(千萬金)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절대적인 가치성을 지니고 있다. 공기는 사람의 생명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으므로 그 가치성에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 이유는 공기가 없으면 1시간도 살 수가 없기 때문이다. 공기의 가치성을 인정한다면 맑은 공기를 위하여 인간들이 공기가 오염(汚染)되지 않도록 온갖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물의 존재성에, 대하서도 인정하지 아니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가치성은 설명하지 아니하여도 알기 때문이다. 사람의 몸에 70% 이상이 수분이라고 하지 아니하는가? 물이 없으면 상상도 하기 싫은 일이다. 물은 생명의 근원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아니할 정도로 그 가치성을 인정받고 있다. 세상만물(世上萬物) 존재성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하기, 때문에, 그 존재의 가치성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존재의 가치성이 없는 불필요한 존재도 있다는 것이다.
암(癌)과 같은 질병의 원인이 되는 것은 존재(存在)의 필요성도 없거니와 존재의 가치성도 없다는 것이다.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고 앗아가는 병균(病菌)은 존재의 필요성도 없거니와 그 가치성은 더욱더 없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사람의 생명을 위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의 생명을 빼앗으려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 존재의 가치성은 전무(全無)하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사람이 사는 사회에 악(惡)이란 존재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가치성은 전무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善)은 존재할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세상에 태어나지 말아야 할 악인(惡人)들이 태어나서 존재하는 것은 선량한 사람들을 해롭게 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태어나서 그 사람의 가치성이 반사회적(反社會的)이라면 그의 존재가치는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가 존재한 가치는 전 인류의 구원자가 되었다는 점에서 그의 존재의 가치성은 세계인들로부터 인정받고도 남음이 있다. 그러나 그를 죽이기 위하여 그를 원수에게 넘겨주는 일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가롯 유다는 그가 태어난 존재가치가 전혀 없다고 본다.
그리하여 예수그리스도는 그를 향하여 하시는 말씀이 “나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너는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으면 좋을 뻔하였느니라”라고 하였다. 이는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으면 하는 것은 그가 세상에 존재하지 아니하였으면 더욱더 가치가 있을 뻔하였다는 말이다. 그가 세상에 태어나서 존재할 가치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도리어 그가 존재함이 예수그리스도에게는 해가 되었다는 것이다. 세상에 태어나지 아니할 사람이 가롯 유다 한 사람뿐이겠는가? 우리 주변에도 얼마든지 많다는 것이다.
독일에 히틀러 같은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존재함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이 인정하지만, 그가 태어난 가치성에 대해서는 인정할 수가 없다. 세상에는 태어나지 아니하였으면 좋을 뻔한 사람들이 한두 사람인가? 세상천지에 널리고 널려있다. 그들은 이 세상에 존재는 하였으되 존재 가치성은 전무 하기에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으면 세계 만민이 고생을 덜 했을 것이, 확실하다. 한반도(韓半島)에도 태어나지 아니하였으면 좋을 뻔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아는 사람은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는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무엇 때문에, 공산주의자가 되어 나라를 둘로 나눠서 서로 죽이고 미워하고 원수같이 여기고 살게, 만들었는가? 그런 사람이 태어난 존재에 대해서는 인정하지만, 그의 태어난 가치에 대해서는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을 뻔한 사람이라고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그뿐 아니다. 정치인들의 존재에, 대하서는 인정하지만, 정치인의 가치에 대해서는 절대로 인정할 수 없는 자들이 많다는 것이다. 차라리 정치인으로 존재하지 아니하였으면 국가적으로 좋을 뻔한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중국속담에 “야망을 성취하기 위하여 자기의 양심을 희생시키는 사람은 재를 얻기 위하여 명화(名畵)를 불태우는 사람이다.”라고 하였다. 양심을 속이는 정치인들은 반드시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중국 격언에 “자기 책임을 남에게 던지는 사람은 야만인(野蠻人)이다. 자기 책임(自己 責任)을 자기가 지는 사람은 성인(聖人) 이다. 남의 짐까지 지는 사람은 신(神)이다.”라고 하였다.
우리 정치인들은 문제의 원인을 “나 때문이라”라고 하는 사람이 없으니 이런 사람들은 정치인 말고도 인간으로서도 존재가치가 없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존재하는 것으로 만족할 일이 아니고 존재의 가치성에 무게를 두고 살아야 할 것이다. 르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라고 하였으니 우리, 모두는 존재의 가치성에 대하여 진지(眞摯)하게 생각하고 존재의 가치성을 발휘하려고 온갖 노력을 다, 해야 할 것이다. 그 이유는 하루, 밤사이에도 죽을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