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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3-03-21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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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어디에 가십니까?

기사입력 2023-03-09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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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어디로 가십니까? 라고 묻는 것은, 행선지(行先地)를 묻는 것이다. 인생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타인(他人)에게 묻기 전에 나는 어디로 가는 걸까? 길 잃은 새처럼 허공을 헤매지 않고 분명히 목적지가 정해져 있다. 아침에 길에 나아가서 바삐 걸어가는 사람을 붙들고 지금 어디를 그리 바쁘게 가십니까?”라고 물으면 그는 가는 발길을 멈추고 하는 말이 직장에 갑니다.” 직장에는 왜 가십니까? “, 벌로 가지요돈 벌어서 무엇 하시렵니까? “집도 사고 저축하였다가 결혼도 해야지요라고 당당하게 답을 한다. 그리고 또 무엇을 하시렵니까? 부자 되어 행복하게 떵떵거리고 살려고 합니다.
 

 

그다음에는요 늙겠지요그다음에는요 죽겠지요라고 대답한다. 결국 행선지(行先地)의 종착역(終着驛)은 죽음이라는 것이다. 누구라도 열차를 타고 의자에 몸을 맡기면 열차는 철로를 미끄러지듯 출렁거리며 달린다. 달리다 보면 어느덧 종착역에 도착하여 각자의 갈 곳을, 찾아 뿔뿔이 흩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열차의 출발역과 종착역은 정해져 있다. 그리하여 같은 열차를 타도 모두 종착역까지 함께 가는 것은, 아니고 중간중간 역마다 내리는 사람이 있듯이 사람도 세상에 태어나서 세상에 삶이라는 열차를 타고 죽음이라는 종착역을 향하여 같이, 출발은 했지만, 내리는 역()과 시간(時間)은 각자가 다르다.
 

 

부산에서 출발하여 사상역에서 내리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대전역에서 혹은 수원, 역에서 내리는 사람 혹은 종착역까지 시간적(時間的)으로 차이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열차에 올랐다. 긴급한 서정으로 내리는 사람도 있고, 천차만별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태어나서 곧바로 죽는 사람도 있고 십 세에 혹은 50세에 혹은 80세에 많게는 100세에 그 이상도 사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세상 모든 사람은 죽기로 태어난 것이다. 성경은 말하기를 한번 죽는 것은, 정한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審判)이 있으리라라고 하였다.
 

 

모세는 말하기를 인생은 70이요 건강하면 80이라도 연수(年數)의 자랑은 슬픔과 눈물, 뿐이라라고 하였다. 분명한 것은, 인생은 생로병사(生老病死)라는 원칙은 변함이 없는 진리이다. 이 진리를 깨달은 인도의 정반 왕의 아들인 석가모니는 인생의 허무함을 깨닫고 부귀영화(富貴榮華)도 다 버리고 입산수도(入山修道)하여 열반(涅槃)에 들어가 결국 불교의 창시자가 되었다. 윤심덕, ()의 찬미 가사에 보면 광막한 광야에 달리는 인생아 너의 가는 곳 그 어데 이냐? 쓸쓸한 세상 험악한 고해에 너는 무엇을 찾으려 하느냐라고 하였다.
 

 

찬송가에 보면 괴로운 인생길 가는 몸이 평안히 쉬일 곳 아주, 없네, 걱정과 고생이 어디는 없으리. 돌아갈 내 고향 하늘나라라고 하였다. 그리고 희망가에 보면 이 풍진(風塵)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푸른 하늘 밝은 달 아래 곰곰이 생각하니 세상만사가 춘몽 중에 또다시 꿈 같도다.”라고 노래하였다. 사람이 세상에 살면서 희망(希望)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사람마다 살면서 바라지 않는 것이, 있겠는가? 부귀영화는 물론이고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져봤으면 하고 희망하는 것은 자유일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다 가진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이 바로 솔로몬 왕이다. 그는 권세(權勢)도 부귀영화(富貴榮華)도 가져보았고 그의 말대로라면 그가 하고 싶은 것은, 다 해보았다고 자기 자신이 고백(告白)하였다. 그리고 여자도 1,000명이나 거느리고 살았다. 그런데 그가 하는 말은 헛되고 헛되며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그는 말하였다. 이는 희망적인 사항이 아니고 경험담(經驗談)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게 살아보았으면 하고 희망(希望)하는 사람의 말과 경험(經驗)한 사람의 말은 천지(天地) 차별이다.
 

 

그는 마지막으로 하는 말이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을 지키는 것이, 사람의 본분이라라고 하였다. 결국 인간은 하나님이 보내셔서 이 세상에 왔다가 끝내는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이것이 인생의 마지막 종착역(終着驛)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베드로는 말하기를 모든 육체(肉體)는 풀과 같고 모든 영광(榮光)은 풀의 꽃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진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지금 어디 가십니까? 일하러 가지요. 마지막에는 어디로 가십니까? 저승(黃泉)이지요 하는 이런 대답은 어느, 누구도 하지 아니할 수 없다. 여기에는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모든 정치인도 예외는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허무한 것에, 집착하여 비양심적으로 비도덕적으로 비인간적으로 살다가 어디로 가겠는가? 모든 사람의 숙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정치인들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떳떳한 일인가? 부끄러운 일인가? 공익(公益)인가? 사익(私益)인가? ()로운 일인가? 불의(不義)한 일인가? 양심에 부끄러운 일인가? 떳떳한 일인가? 종착역 도착시간은 가까이 오는데 하차할 준비를 하되 정치인은 앉은 자리도 깨끗하게 정리하고 내랄 준비를 하는 것이 옳지, 않는가? 다윗왕은 인생의 최종 종착역(終着驛)이 가까이 오는 시점에서 아들 솔로몬에게 유언(遺言)을 남겼다.
 

 

나는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로 간다. 너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네 대에서 왕통이 끊어지지 않는다.”라는 가문에 희망적인 말을 남기고 가듯이 정치인들도 국가와 국민을 위하여 살다가 마지막 종착에서 하차할 때 후손들에게 너희도 국가(國家)와 국민(國民)을 위하여 산다면 우리 가문(家門)에서 대대로 위대(偉大)한 인물이 날 것이라는, 유언을 남겨놓고 종착역(終着驛)에서 안전하게 하차(下車)하여 영원한 영면(永眠)에 들어가 그동안의 수고에서 벗어나서 편히 쉬기를 바란다. 끝으로 지금도 계속 가고 있는 그 길이 가문의영광의 길이 되어 국경일마다 기억하는 일은 있어도 어느, 가문처럼 매국노(賣國奴)의 후손이라는 수치스러운 방향을 향하여 뚜벅뚜벅 걸어가는 문제의 정치인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윤근 칼럼리스트 (airturbo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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