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사물(事物)이 목적(目的) 없이 존재하는 것은 없다. 그렇다면 인간도 목적 없이 존재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목적을 위하여 계획적으로 스스로 태어난 것이 아니고 내 의지(意志)와는 전혀 관계없이 불가항력적(不可抗力的)인 타의(他意)에 의하여 태어난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태어날 때부터 공수(空手)로 태어났다. 내가 태어날 계획이 있었다면 세상에서 살 수 있는 모든 것을, 준비해서 태어났을 것인데 내 의지와는 전혀 관계없이 태어났기 때문에 빈손으로 태어나서 무엇이나 얻어먹고 사는 처지가 되었다.
그러나 태어났으니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성장하게 되고 철이 들어 부모님의 은혜도 알게 되고 키워주신 고마운 마음도 들게 되었고 차츰 기왕 태어났으니 목적 없이 살다가 무미하게 죽는 것, 보다는 사는 날 동안은 인생으로 태어났으니 인생답게 살다가 인생답게 죽어야지 하는 마음이 들어 삶의 목표를 정하게 되는데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사람답게 살다가 사람답게 죽어야 하겠다는 것이 일차적인 목표로 정하고 곱게 살고 곱게 늙고 곱게 죽겠다는 것이, 태어난 자신의 목표라는 것이다.
세상에는 사람으로 태어나서 개가 같이 살다가 개같이 죽는 사람도 있고 성자같이 살다가 성자 같이 죽는 사람도 있으며 사람 같이 살다가 사람 같이 죽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기왕에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이름이라도 남기고 세상을 떠나야 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온갖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속담에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가는데 사람은 죽어 이름이라도 남기고 죽어야 하지 않겠나”라는 목표를 걸고 살아야 할 것이다.
사람들은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를 먼저 말하지 않고 “너는 무엇을 위하여 사는가?”라고 물어보는 습관이 있다. 그러나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라고 물어야 삶의 목표를 정하게 될 것이다. 사람마다 태어난 환경이 다르다. 어떤 사람은 금수저로 태어났고 어떤 사람은 흙수저로 태어나서 환경에 따라서 자라는 과정도 천태만상(千態萬象)이다. 그리하여 태어난 환경에 따라서 자라나는 성장 과정도 각각 다르다. 가난한 환경에서 태어난 사람은 삶의 목표를 돈을 벌어서 가문을 부유하게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열심히 일한다.
좋은 환경에서 태어난 사람은 먹고 마시고 즐기고 고생이라고는 전혀 알지 못하고 살아간다. 속언에 “눈물 젖은 빵을 먹지 않고는 인생을 알 수 없다”라는 말과 같이 부자, 집에서 태어난 사람은 먹고 마시고 즐기며 사는데 목표를 세우고 살아간다. 그래서 태어난, 과정과 성장 과정이 사람이 사는 목적을 정하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된다. 그래서 속언에 “인간은 환경의 지배를, 받게 된다.”라는 말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이 아무리 목표를 정하고 산다고 해도 자신의, 생각과 뜻대로 된다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다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성경은 “너는 내일을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한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인생은 나는 어떻게 살겠다는 것은 나의 계획이지 완전히 성사된다는 보장은 없다. 그리하여 인사말 중에 “밤새 안녕하십니까?”라고 한다. 인생은 밤사이의 일도 모르기 때문에 내일의 계획은 계획일 뿐이지 장담은 할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이다.
신익희 선생은 많은 국민의 사랑을 받으며 1956년 5월 2일 한강 백사장에서 열린 그의 유세에는 많은 인파가 모여 그의 인기를 실증하였다. 그러나 그로부터 사흘 뒤인 5월 5일 호남지방에서의 유세를 위하여 전주로 가던 중 기차 안에서 심장마비로 죽었다. 그에게는 추모(追慕) 표로서 185만여 표가 던져졌으며, 5월 23일 국민장으로 서울, 우이동에 안장되었다. 이것이 인생이다. 성경은 “바다의 물고기가 종횡무진(縱橫無盡) 동서남북으로 자유롭게 헤엄치고 다니다가 언제 사람이 던진 그물에 걸릴지 알 수 없다.”라고 하였다.
같은 맥락에서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너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라고 묻지 말고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라고 자문자답(自問自答)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나의 생명이 앞으로 얼마나 남았는지 아무도, 무른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자신은 남은 생을 어떻게 살까? 생각하면서 삶의 목표를 정한다면 “하늘에 한 점의 부끄러움 없이 살겠다.”라는 목표를 정하고 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생명이 붙어 있는 한 각계, 각층에서 종사하는 사람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주어진 일이 내게는 “오늘이 마지막이라”라는 심정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
사무엘은 정치 지도자요 종교 지도자, 이면서도 하늘이나 사람들에게 한 점의 부끄러움 없이 살았음을 백성들이 인정하였고 다윗왕은 한 때는 실수를 하였지만, 크게 후회하고 회개하였다. 그리고 죽을 때는 자식에게 유언하기를 “나는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로 가거니와 너는 대장부가 되어 창조주를 섬기라 그리하면 네 대에서 왕통이 끊어지지 않는다”라고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지금부터 새로 태어났다고 생각하고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라는 명제(命題)하에 삶의 방향을 새롭게 설정하여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나부터 먼저 인간이 되고 인간답게 살고 다음에 다른 사람을 보고 인간답게 살라고 권하는 것이, 순서가 아닌가 싶다. 속담에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라는 격이 되어서는 비판만 더욱더 받을 것이라”라고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그러므로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하여 사는가? 자신의, 삶의 방향부터 올바로 정하고 주어진 일에 성실하게 감당해야 할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네, 자신을 알라”라고 하였으니 나는 무엇을 위하여 사는가? 반복해서 생각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