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관념(固定觀念)은 현재의 공간에 갇히게 되는 신념을 말한다. 고착관념(固着觀念)이라고도 한다. 이는 주의(注意)가 자연(自然)히 한 가지 대상(對象)으로 쏠리어, 언제나 의식(意識)에 고착(固着)하게 되는 관념(觀念)을 말하는 것이다. 고착(固着)이란 굳게 붙음. 정주(定住)하여 이사(移徙)하지 아니함을 말하는데 다시 말하면 시멘트가 굳은 것과 같이 요지부동(搖之不動)을 뜻하는 것이다. 그래서 고정관념이라는 것은 매우 무서운 것이다.
문제는 고정관념(固定觀念)이 부정적(否定的)인가 긍정적(肯定的)인가에 따라서는 차이가 날 수 있다. 긍정적으로 고정관념이라면 나의 성장과 성공으로 부를 창출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정적이라면 자신이 부정적인 색안경을 쓰고 사물을 보기 때문에, 이는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해를 끼치면, 끼쳤지, 이롭게는 하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부정적인 고정관념은 앞을 가로막는 장벽(障壁)과 같은 역할을 한다.
그래서 떠도는 말이 “꼰대는 성장을 멈춘 사람이고 어른은 성장을 계속하는 사람이다.”라고 한다. 고집(固執)이란 말이 있는데 자신의, 생각을 절대로 버리지 못하고 목이 달아나도 주장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데 이것도 두 가지 면에서 생각할 수 있다. 진리를 위해서는 고집스러워야 하지만 진리도 아니, 것을, 고집만 부려서 한치의, 양보도 없다면 이는 불필요한 고집이다. 속담에 “항우는 고집으로 망하고 조조는 꾀로 망한다.”라는 말이 있다. 초나라 항우가, 고 집 때문에 한나라 유방한테 망했다.
그래서 고집이 세 사람을 벽창우(碧昌牛)라는 말을 듣게 된다. 사람이 지식이나 많은 경험을 가지면 잘못된 옳은 소리를 하기가 쉽다. 사람들은 잘못 알고 있는 것만 고정관념이라 생각하는데, 확실하게 아는 것도 고정관념이다. 세상에 정답이란 없다. 평생 그 해답을 찾기도 힘든데. 모두가 옳다고 하는 소리는 반드시 잘못이 있다. 벽창우는 평안북도 창성 지방의 크고 억센 소라는, 말인데 사람이 고집이 세어 융통성이 없으면 우리 속담에 “꼿꼿하기는 서서 똥 누겠다.”라는 말이 있다.
그리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하는 사람을 가리키어 말하기를 “쇠고집 닭 고집이라”라고 한다. 현실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늙은이의 짜증은 점점 늘고 행동은 어린아이처럼 변해서 투정을 일삼는 노인을 언제까지 용인할 수만도 없다는 것이다. 전문의사의 말은 “정신적 노화 과정에 있다.”라는 것이다. 사람이 신체적 노화에 가려있던 노인의 정신적 노화가 드러나서 같은 말이라도 상처를 더 받을 수 있는 정신적 노화는 특히 노인 부양, 가족 간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그들이 과거 경험에서 터득한 가치관이 좀체 바뀌지 않는다든지 하는 건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늙어갈수록 인간의 기억을 과거에 머물게 하는 게 정신적 노화이기 때문이다. 빠르게 세상이 변하든 말든 상관할 바가 아니고 오로지 자신의, 세계로 침잠(沈潛)한다. 친숙한 물건들을 옆에 두어야, 자신과 그 주변은 그대로 있다는 편안함과 만족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심각한 문제는 세대 차이에서 겪는 갈등은 고정관념을 버리지 못하고 그 고정관념을 이해지, 못 하는 데서 생긴다는 점이다.
이유는 살아온 세월 탓이다. 노인이 살아온 시대는 본건주의(本件主義) 사상이 농후한 시대에 살아왔기 때문에, 공자와 맹자의 영향이 만연하던 시대에 살았다는 점이다. 그러나 지금은 개화(改化) 시대에 살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늙은이는 자식이 부모의 명령을 따르고 부모를 봉양하는 것이 옳다는 고정관념이(固定觀念) 이 굳어져 있다. 그런데 지금의 시대 젊은이들은 첨단과학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므로 사고방식(思考方式)이 다르다. 옛날에는 부모가 훈육을 위하여 체벌(體罰)을 가하였다. 그래도 자식들은 당연하게 여기고 매를 맞았다.
그런데 지금은 체벌을 가하면 경찰에 신고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는 인권을 무시한다는 이유로 문제가 된다. 이렇게 옛날과 지금은 하늘과 땅처럼 차이가 난다. 이런 시대에 살고, 있는 늙은, 이들은 시대에 뒤떨어진 고정관념을 바꿔야 한다. 젊어서는 자식을 먹여 살려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고 자녀, 위하여 몸이 부서지도록 노력하였으니 이제 내가 늙었으니 너희가 늙은 부모를 봉양(奉養)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 굳어져 있기, 때문에, 당연히 늙으면 자식들이 부모를 공경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는 데서부터 문제가 생긴다.
그런데 자식들은 자신들이 결혼하여 살게 되면 자신들의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라 자기들의 생활도 어려운데 부모를 돌볼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부모는 자식이 늙은 부모를 돌보는 것이, 이치에 맞는다는 고정관념을 굳히고 있으니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시대에 따라서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부모는 늙어서 자녀들에게 용돈을 타서 쓰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자녀도 독립해서 살도록 어려서부터 교육하고 부모는 노후를 생각하고 준비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노후의 건강이다. 그리하여 다윗은 말하기를 “나를 늙어서, 버리지 마소서 백수가 되어도 버리지 마소서”하고 기도하였다. 모세는 120년을 향수(享壽)하였지만, 눈도 어둡지 않고 귀도 먹지 않고 기력도 쇠하지 않고 정신도 흐리지 않았다고 하였다. 오늘의 늙은이들도 이점을 기억하고 건강에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그리고 자녀들이 잘되어 행복하게 살도록 기원(祈願)하면서 사는 것이다. 그리하여 자녀에게 모든 것을 맞기고 그들의 도움을 바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내가 사는 날까지 병들지 아니하여 자녀들에게 걱정 끼치지 아니하고 그들의 삶에 행복한 일만 있기를 바라며 후손들이, 잘 되기만을 기도하면서 자녀들이 효도할 때 무한 감사하는 마음이 있어야 할 시대라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큰 기대를, 가지면 반대로 실망이 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