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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2-05-20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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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적(意圖的)인 선물약속(膳物約束)

기사입력 2022-01-20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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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설을 앞두고 자녀에게 의도적으로 선물을 약속하는데 아들에게는 너는 아버지 말 잘 듣고 공부 잘하면 게임기 사줄게. 딸에게는 네가 원하는 것은 다 사, 줄게 시기는 음력, 설로 못을 박았고 의도는 아버지가 원하는 공부 잘하고 말 잘 듣는 것이다. 그런데 이 아버지는 선물(膳物)이라는 개념을 이해, 못한 것, 같고 의도된 목적만 달성하면 된다는 계산이었다. 의도된 계산은 아이들이 자신의 말을 잘 듣도록 하는데, 있고 자기가 원하는 공부 잘하는데, 있었다. 이는 선물과는 거리가 멀다. 선물은 조건이 붙으면 선물이 아니다. 조건을 붙이면 이는 선물이 아니라 부모의 의도한 조건을 이루어드린 대가라는 것이다.

 

 

그리고 의도적(意圖的)으로 선물을 약속했는데 그 의도는 무엇을 이루려고 꾀하는 수단을 전제로 했기 때문에 자신의 계획을 이루려는 수단과 방법에 동원된 방법과 수단이 선물이라는 미끼를 사용한 것이다. 면밀하게 말하면 악의(惡意)가 없는 속임수에 불과한 것이다. 의도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는 이것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위장된 행위가 분명하다. 어느 사람이 거액의 매매 차익을 노려 그 회사의 주식을 의도적으로 사들인 후 프리미엄을 받고 상대 회사에 다시 팔은 일이나 순식간에 일어난 화재는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불을 질러 생긴 것으로 드러난 것과 같은 성격이다.

 

 

그래서 선물은 시기(時期)를 정할 필요가 없고, 그리고 조건을 붙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약속은 필요가 없고 자녀들이 필요할 때 시기나 조건과는 무관하게 선물해주면 된다. 왜 하필 조건과 시기를 붙이는 것은 부모의 일방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과 방법으로 이용한 행위로밖에 볼 수 없다. 선물은 전제조건이 필요하지 않고 언제나 무조건 상대에게 선물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선물을 한다고 약속해놓고 하지 아니하면 비 없는 구름과 같다.”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기독교에서는 구원(救援)은 은혜(恩惠)로 받았다고 한다. 바울 사도는 말하기를 은혜(恩惠)로 인하여 구원(救援)을 얻었나니 이는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膳物)이라라고 하였다. 구원은 어떤 조건을 전제로 해서 받은 것이 아니고 공짜로 즉 선물로 받은 것이다. 그래서 다윗은 이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라고 은혜를 보답할 방법을 찾았다. 선물의 성격은 주는 자의 선의지 받는 사람 행위의 대가가 아니라는 것이다. 의도적인 선물은 엄격하게 말해서 뇌물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뇌물과 선물을 주는 방법만 약간 다를 뿐이다.

 

 

한국의 대표 동요 오빠 생각 가사를 보면 뜸북뜸북 뜸부기, 논에서 울고 뻐꾹 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 제 우리 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시며 비단 구두 사가 지고 오신, 다더니라고 하였다. 이는 어린이의 선물에 대한 의식이 얼마나 애처로운 것이었나를 짐작할 수 있다.”라고 볼 수 있다. 일제, 강점기에 짚신도 제대로 신지 못하는 처지에서 비단 구두를 사서 온다는 오빠의 말에 여동생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기다렸을 것이다. 이는 순수한 약속이라고 보아야 한다. 동생의 요구도 아니고 순전히 오빠의 자애로운 마음의 선물이었다는 것이 매우 감동적이다.

 

 

오빠는 여동생에게 어떤 조건적인 요구도 없고 계획적인 의도도 없고 순순한 남매의 약속한 선물이라는 것이 가슴에 와닿는다. 같은 맥락에서 오빠 생각의 비단 구두는 일제강점기라는 상황이 너무나도 참혹하였을 때라 오빠의 약속한 선물을 기다리는 것은, 누구나 순수한 남매의 정이라는 것을 공감하고 손뼉을 칠 수 있지만, 현재 코로 19로 인하여 고통을 받는 우리 국민의 어려움을 이 시점에서 정부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320만 명에게 300만 원씩 또는 500만 원씩 지원하겠다고 추경 14조 원을 이달 말에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고 한다.

 

 

이는 인재도 아니고 세계적으로 당하는 일반적인 공통된 고통이고 나라 살림은 그렇게 지원할 수 있는 형편도 아니라는 것인데 현재 국가부채는 1,100조 원이 된다는 보도를 보면 정말 걱정하지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이 돈이 국가 빚이라고 생각하면 매우 걱정되어 잠이 올 수 없는 상태이다. 그렇다면 자영업자나 소상공인들이 이 난국(亂國)300만 원 또는 500만 원을 지원받았다고 완전히 문제가 해결되느냐가 문제인데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완전히 해결된다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앞으로 이 상황이 계속 간다면 정부는 어떻게 할 것인가? 성경은 사랑의 빚 외에는 빚지지 말라라고 하였다. 그런데 우리 국민은 오래전부터 빚은 살림 밑천이다.”라는 말이 있어 빚을 지는 것은, 당연한 줄 알고 있다.

 

 

에머슨은 말하기를 빚을 지는 것은 노예가 되는 것이다.”라고 하였고 S. 존슨은 말하기를 작은 빚은 총알이고 많은 빚은 포탄이다.”라고 하였다. 총알보다 포탄은 파괴력이 더욱더 심각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빚을 호랑이보다 더 무서워해야 할 것이다. 성경에 선지 생도가 빚을 지고 죽었다. 그런데 빚을 준 사람이 죽은 자의 두 아들을 노예로 끌고 가려 하는 순간 하나님의 선지자가 기름을 만들어 그 빚을 갚게 하여 두 아들이 노예로 끌려가지 않게 하였다. 국가도 빚을 무서워해야 하고 개인도 빚을 무서워해야 하는데 정치인들이 의도적으로 빚을 내서라도 국민에게 지원금을 준다면 이는 매우 두려운 일이라 엄밀히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빚으로는 그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은, 만인이 아는 상식이다. 특히 정부는 그 어떤 의도를, 가지고 빚을 내서라도 국민에게 아니면 소상공인이나 자영업자에게 300만 원 또는 500만 원씩 준다면 그것이 1회 적으로 해결되느냐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시적인 해결책보다 근본적이고 영구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외국에도 빚을 진나라가 국가적으로 부도가 나서 빈민국으로 추락하여 세계적인 거지의 나라가 있음을 알고 국가 장래를 위해서라도 후손들에게 빚을 물려주는 기성세대가 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아무리 의도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해도 국가와 국민 앞에 죄를 짓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빚을 내서 사람의 마음을 이용하는 것은 엄격하게 따져서 국가와 국민에게 죄를 짓는 것이다. 자신의 돈도 아닌 것을, 자신의 돈이나 주는 것처럼 나라의 빚으로 자신이 의도한 목적을 이루려는 것은 고도의 위장된 전술이나 다르지 않다. 나라의 지도자가 되려는 목적은 나라의 빚을 청산하고 가난한 나라를 부국으로 만들려는 목적을 세우고 국가 경제 상황이 좋지 아니할 때는 국민에게 조금만 더 견디어 달라고 호소하여 국민의 공감(共感)을 이끌어, 내어 동참케 하는 능력(能力) 있는 국가의 지도자가 선출되어야 국가의 희망이 보이는 것이다.

이윤근 칼럼리스트 (airturbo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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