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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1-11-30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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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와 곤충(昆蟲)

기사입력 2021-11-18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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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는 다양하게 많이 있다. 사람의, 냄새를 채취(體臭)라고 하는데 노인 냄새, 땀 냄새, 발 냄새, 샅 냄새 입 냄새 홀아비 냄새 남편 냄새 아내 냄새 갓난아이 냄새 등등 다양한 냄새를 표현할 수 있다. 세상에 수많은 냄새 중에 두 가지만 생각한다면 향취(香臭)와 악취(惡臭)로 구분할 수 있다. 향기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마력이 있지만, 악취는 사람을 밀어내는 괴력(怪力)이 있어 천하장사라도 도망을 친다. 같은 냄새지만 냄새의 종류에 따라 그 냄새를 맡는 사람들의 반응이 달라진다.

 

 

은유(隱喩)적으로 표현하면 다양하게 말할 수 있다. 성경에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나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우리는 구원을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그리스도의 향기라라고 하였다. 다시 말해서 예수를 믿는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하였다. 즉 예수의 냄새를 풍기는 사람들이라는 말이다. 사람이 냄새를 풍기는 것은 무엇을 먹었느냐에 따라서 냄새의 종류가 다르게 나타난다.

 

 

서양사람들은 우유를 많이 먹기 때문에 누린내가 나고 중국 사람들은 양파를 많이 먹기에 양파 냄새가 나며 한국 사람은 김치를 먹기 때문에 김치 냄새가 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사람이 무엇을 먹었느냐에 따라서 각각 냄새가 다르게 풍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리하여 예수를 믿는 성도(聖徒)들은 한 해에 성찬식(聖餐式)을 두 번 이상은 한다. 그 이유는 예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그의 돌아가심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형식적으로 성찬식(聖餐式)에 참여하여 포도즙이나 떡을 먹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냄새가 날 리가 없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살과 내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그 속에 생명이 없고 내 살과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한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먹는 시늉만 하면 냄새가 나지 않는다. 정말 먹고 마셔야만 냄새가 나기로 되어 있다. 술을 마시지 아니하고 마시는 시늉만 하면 그 사람에게서 술 냄새가 절대로 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진정으로 취하도록 술을 마시면 그의 몸에서 술 냄새가 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같은 맥락에서 예수를 진정으로 믿으면 예수 냄새가 성도들의 언행에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예수를 믿는 척하는 사람에게서는 예수 냄새가 나타날 리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예수의 살과 피를 제대로 먹고 마신 자에게서는 진정으로 그리스도의 향기가 날리게 되어 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을 당해도 예수그리스도의 언행을 실천하면 예수의 냄새를 풍기게 되어 있다. 예를 든다면 손양원 목사는 공산주의 사상에 물든 청년이 자기의 두 아들을 총으로 사살하였는데도 범인이 당시 군법에, 의하여 사형 직전에 처한 그를 용서하고 구하여 살려주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향기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는 예수의 언행을 본받아 자신이 희생하여 타인에게 유익을 주었다. 이런 것이 예수의 냄새를 풍기는 그리스도의 향기라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교회 성도들은 예수 믿는 냄새도 나지 아니하는 신자가 많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냄새는 다양하지만, 진정으로 그 냄새를 맡으려 하지 않다는 것이 아쉬운 것이다.

 

 

돈도 냄새가 있다. 노동자가 땀을 흘려 번 돈은 풋풋한 땀 냄새가 나고 공직자가 받은 뇌물의 돈은 구린 냄새가 나며 극빈자를 위하여 기부한 돈 냄새는 향기가 난다. 돈은 같은 돈인데 버는 과정과 쓰는 방법에 따라 냄새가 다르게 나타나고 사람들의 반응도 크게 차이가 난다. 꽃에서 풍기는 향취(香臭)는 벌과 나비를 불러 모아 나비는 춤을 추고 벌은 화분(花粉)과 꿀을 채취하여 자신도 먹고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어 먹게 하는 아름다운 결과를 맺게 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악취(惡臭)는 사람을 밀어내며 파리를 불러모은다. 그리하여 파리는 악취가 나는 사람의 사체와 동물의 사체가 있는 곳에 모여들어 알부터 낳고 그다음에는 병균을 사람에게 옮겨서 위생적으로 큰 해를 끼치게 하는 반갑지 아니한 곤충이다. 그리하여 이집트가 10가지 재앙을 받을 때 재앙의 한가지가 파리 떼를 보내서 사람들의 일상생활이 어렵게 한 적도 있다. 그러나 벌()은 꽃에 살포시 앉았다가 다른 꽃으로 이동하면 과일의 수정(授精)까지 시켜서 사람이 과일을 먹을 수 있도록 큰일을 해내기도 한다. 같은 맥락에서 사람도 같은 사람이지만, 성격상 벌과 같은 성격을 가진 사람과 파리와 같은 성격을 가지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정치계에서도 파리 떼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긍정인 면에서 사용하는 것이 아니고 부정적인 면에서 사용한다고 보아야 한다. "최근 어느 대통령 후보 지지율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현역과 당협위원장이 어느 후보 쪽으로 많이 몰리고 어느 후보 쪽엔 별로 안 가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어느 후보가 주사파 출신이라고 거의 쌍욕 비슷하게 반응을 하고 어느 후보를 지지하는 의원들을 파리 떼라고 욕했다며 편 가르기와 갈등을 부추기는 이런 정치 때문에, 의원들이 어느 후보 쪽에 덜 가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파리 떼란 말을 조금 수정해서 말하면 줄서기 하는 자들이라는 말이다. 벌과 나비는 생리적(生理的)으로 파리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아무리 해도 벌과 나비는 꽃을 버리고 똥과 사체(死體)를 따라 줄서기 하지는 아니한다. 그러나 파리는 똥이나 사람과 짐승의 사체가 있는 곳으로 몰려들지만, 벌과 나비는 그 더러운 곳보다는 향기가 풍기는 아름다운 꽃이 있는 곳으로, 몰려가는 특성(特性)이 있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마찬가지로 파리의 성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더러운 뇌물(賂物)이 있고 공짜 돈이, 있으며 권력이 있는 곳에 파리 떼처럼 모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벌과 나비와 같은 성격이 있는 고귀한 사람은 깨끗하고 향기가 있고 명분이 있는 곳에 줄 서는 사람도 많다는 것이다.

 

 

벌과 나비는 거미와 같이 다른 곤충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자신의 노력에 따라 과수원에서 과일의 열매도 수정시키고 꿀과 화분(花粉)을 채취하여 자신의 후손을 위하여 사용하고 다른 사람을 위하여 봉사하는 편에 서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도 일벌에게 배울 점이 많다는 것이다.

 

 

곤충 중에는 개미와 거미 그리고 꿀벌과 나비가 있다면 사람도 개미나 거미와 같은 성질을 가진 사람의 편에 줄서기 하지 말고 꿀벌과 나비와 같은 성질을 가진 사람의 편에 줄서기 하여 자신과 이웃과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곳에 몰려드는 것은 가능하지만, 거미나 파리와 같이 해를 끼치는 편에 줄 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사리사욕을 초월하여 타인의 유익을 위하는 사람에게 줄을 서는 것이 더욱더 현명한 인간 처세라는 것을 명심, 해야 할 것이다.

 

 

분명히 벌과 나비 그리고 파리는 냄새 따라서 자신의 목적지로 간다는 것을 알고 나는 어느 곤충에 속하였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분명한 것은 어디에 줄서기 하든지 자유이지만, 결과는 벌과 나비는 사랑을 받지만, 파리는 사람의 미움을 받아 독살(毒殺)을 당하든지 아니면 파리채라는 곤장에 맞아 죽는다는 것은 만고불변(萬古不變)의 진리(眞理)라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윤근 칼럼리스트 (airturbo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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