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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조사(與論調査) 반드시 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

기사입력 2021-07-28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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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조사(與論調査) 반드시 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

 

여론의 뜻은 국어사전에 보면 사회 대중의 공통된 의견 세상 사람들의 의견이라고 하였다. 개인적인 의견은 상대와 대화를 통해서 발표할 수 있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라 혼자서만 살 수가 없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가정을 이루고 너와 내가 모여서 이웃을 형성하고 이웃이 모여서 사회가 형성되고 국가가 세워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원리이다. 국가와 국가가 모여서 세계화를 이루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개인과 개인의 의사소통은 대화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사회나 국가는 여론을 통하여 소통이 이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느 국가나 어느 사회라도 대화를 통하여 소통이 이루어져야 발전이 있는 것이다. 소통이 불통 되면 발전이 멈추고 여론이 잘못 형성되면 국가의 재난을 초래할 수 있는 위험성도 있다. 예를 들면 바벨탑을 쌓아 올릴 때 여론은 다시는 홍수가 난다고 해도 배() 같은 것은, 만들 필요가 없고 탑, 꼭대기로 올라가면 된다는 여론의 우세로 바벨 탑을 쌓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괘씸하게 여기시고 인간들의 교만한 마음을 두고만 볼 수 없어 탑을 쌓지 못하도록 모든 사람의 언어(言語)를 불통(不通)할 수 있게 알아들을 수 없도록 혼잡(混雜)하게 하여 불통(不通)되게 만들었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언론을 매수하여 예수를 죽이도록 악용(惡用)하였다.

 

 

개인과 개인의 대화는 서로의 의사소통이지만, 사회와 국가 간의 소통은 여론을 형성하여 소통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불통(不通)은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의 알 권리를 빼앗는 것은 사회 언론을 통제하는 것이고 인간의 인권(人權)을 박탈하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중세기 로마 가톨릭에서는 성도들의 알 권리를 침해하여 성경도 마음대로 읽을 수 없도록 만들었다. 그리하여 독일의 마틴 루터는 종교개혁을 통하여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여 전 세계어로 만들어 누구라도 자유롭게 읽어 신앙생활에 많은 도움을 받게 하고 신인(神人)간에 소통이 원활하게 하도록 하였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농아(聾啞)가 아닌 이상 자신의 의사를 개인에게나 단체에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어야지 응당(應當)히 할 말도 못 하고 언어에 제재(制裁)를 받는 것은, 자유인으로서는 인권침해(人權侵害)를 받는 일이라 농아가 아닌 농아로서 살아야, 하는 장애인과 다르지 않다. 설화(說話)에 임금님 귀는 당나귀라는 이야기를 읽어보면 모자를 만드는 사람이 임금님 귀가 유난히도 큰 것을 발견하였지만, 타인에게 말하면 자신의 생명의 위태로움에 처하게 되어 결국 대나무 숲에 들어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라고 하였다는 이는 말할 권리를 빼앗긴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날 이후에 대나무 숲에서 바람만 불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소리가 흘러나와 결국에는 이것이 여론화되어 임금님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므로 진실은 누구도 막을 수 없다. 다만 여론을 악용(惡用)하여 개인이나 단체가 이익을 추구할 때 사회적이고 국가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언론이나 여론을 전달하는 매체가 신문, 라디오, 텔레비전과 대중 매체가 있어 전국 어디서나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여론의 허()와 실() ()과 실()이 있다는 점이 문제일 수도 있다. 여론(與論)을 소문(所聞)이라고 할 수 있는 데 말()은 눈덩이와 같은 성격을 지고 있다. 높은 데서 큰 눈덩이를 굴려 내려보내면 밑에 가서는 아주 작아져서 없어질 수도 있고 작은 눈덩이를 높은 언덕에서 굴러 보내면 밑에 가서는 엄청나게 크게 될 수도 있다. 같은 맥락에서 여론(與論)은 진실과 멀어질 수도 있고 너무 과장되어 처음의 말과는 거리가 멀어 전혀 다를 수도 있다.

 

 

스무고개 오락을 해보라 처음에 전달된 말이 끝에 가서는 전혀 다를 수 있음을 알 수 있듯이 여론과 소문은 처음보다 끝에 가서 엉뚱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속담에 허벅지 봤다고 말했는데 결과는 다른 곳을 보았다라고 하여 문제가 되는 부작용이 종종 나타난다. 여론몰이는 진실을 거짓으로 둔갑, 시켜 엉뚱한 결과를 낳을 수 있기에 조심해야 한다. 특히 오늘의 시대는 피알시대이다. TV, 나 라디오 방송국에서 잘못 말하면 일개 회사가 망()할 수 있고 효과적으로 선전하면 회사나 상점이 흥()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선거 때마다 여론조사(與論調査)를 하는데 때로는 이 여론조사가 유권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여론조사의 대상이 전국의 유권자 전부가 아니고 일부 아주 극히 적은 수의 여론을 전체적인 국민의 여론인 것과 같이하여 모든, 유권자들의 판단력을 흐려놓는 것은 매우 위험하고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선거가 끝나고 출구조사(出口調査)는 선거가 끝났으니 유권자들의 투표행사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아니하지만, 투표 이전에 여론조사 발표는 여론에 민감한 유권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클 수밖에 없다. 사람은 누구나 군중심리(群衆心理)가 있어서 모두가 가는 길로 가야지 나 혼자만 독불장군(獨不將軍)이 될 수는 없다는 뜻으로 흔들릴 가능성이 매우 크다. 다시 말하면 여론의 수치(數値)가 높은 사람을 찍어야지 하는 심리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론조사 기관마다. 결과가 다르다는 것은 여론조사의 신빙성이 낮다는 것이다. 1,936년 미국 대통령선거 루스벨트 예측 발표한 것이 적중했다는 역사도 있지만, 여론조사가 맞느냐 틀리느냐가 중요하지 않고 여론조사(輿論調査)로 인한 유권자들의 마음이 혼란하여 흔들리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여론으로 선거가 좌우되기에 댓글 조작이라는 사건이 터지고 사회문제화된 것이, 아니냐는 말이다. 그러므로 선거 때는 후보들의, 대한 여론을 조사하여 발표하지 말고 유권자들이 자유롭게 후보를 선택할 수 있도록 아예 법적으로 여론조사와 댓글을 금지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솝 우화와 같이 당나귀 팔러 가는 부자(父子)와 같은 어리석은 결과를 낳지 말아야 한다. 특히 당나귀 팔러 가는 부자는 가족단위(家族單位)지만 국가의 대사(大事)인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중대한 선거에 앞서 여론조사라는 여기에 휘둘리어 국가적인 대사를 그르치는 일은 없어야 하겠다는 말이다.

 

 

언제까지 정치권과 당()의 운명을 여론조사에 좌우될 것인가? 여론을 반영하다 보니 당사자들은 자신의 실력보다는 여론을 의식하고 여론의 비위를 맞추려는 부작용도 적지 않다. 그리하여 여론조사에서 정치가 좌우되지 아니하려면 거미줄을 치는 거미를 잡아야 근본적으로 거미줄을 걷지 아니하여도 되는 것과 같이 여론조사로 나타나는 부작용도 여론조사 자체를 법적으로 막으면 킹크랩과 같은 부작용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여론조사와 킹크랩과 같은 여론에 휘둘리지 않는 수준 높은 국민이라는 것을 당당하게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이윤근 칼럼리스트 (airturbo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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